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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ㅣ전시

소리를 그린다는 것은 무엇일까, 〈김수철: 소리그림〉 관람 후기

by 멕먼 2026. 3. 15.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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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가 김수철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화가 김수철을 만나는 전시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 〈김수철: 소리그림〉은 단순히 유명 음악인의 이색 전시로 보기에는 아까운 전시였다. 오히려 이 전시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음악가 김수철’이라는 이름을 잠시 내려놓고, 오랜 시간 혼자 축적해온 회화 세계를 독립된 예술 언어로 마주하게 만드는 자리였다.

    전시를 보고 나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이것이다. 이 전시는 유명인의 취미를 공개한 자리가 아니라, 수십 년 동안 다른 방식으로 예술을 계속해 온 한 작가가 자신의 또 다른 언어를 본격적으로 세상 앞에 꺼내 놓은 사건에 가깝다는 점이다.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이번 전시는 김수철이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약 1,000여 점의 작업 중 100여 점 또는 160점 안팎을 엄선해 처음 대규모로 선보인 자리이며, 예술의전당 정식 전시 심사를 거쳐 열린 첫 개인전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Daljin)

    이 전시가 흥미로운 이유는 ‘소리’를 단순히 그림으로 번역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리그림〉이라는 제목만 들으면 처음에는 음악을 시각화한 직관적인 전시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 공개된 전시 설명을 읽어보면, 이 전시는 단순히 음표나 리듬을 화면으로 바꿔 놓은 수준이 아니다. 예술의전당과 전시 소개 자료는 이 작업의 핵심을 “소리는 그림이고, 그림은 소리다”라는 작가의 철학, 그리고 ‘시청각의 일체’, ‘가청과 비가청의 공존’, ‘우주적·존재론적 관점’이라는 세 가지 축으로 설명한다. 즉 들리는 소리만이 아니라, 들리지 않지만 느껴지는 진동과 기운, 생명감과 침묵까지도 회화의 재료로 끌어들이려는 시도인 셈이다. (Daljin)

    이 지점 때문에 이 전시는 단순한 크로스오버나 장르 혼합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음악가가 가진 시간 감각, 리듬 감각, 밀도 감각이 회화의 표면으로 옮겨오면서 전혀 다른 종류의 추상 언어를 만들어낸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화면 앞에 서면 그림을 본다기보다 어떤 파동을 마주한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은데, 바로 그 감각이 이 전시의 가장 큰 특징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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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넘게 이어온 그림일기, 그리고 ‘숨겨진 세계’의 첫 공개

    이번 전시가 인상적인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이 작업이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러 기사에 따르면 김수철은 음악 활동과 병행하면서도 30여 년 넘게 그림을 이어왔고, 음악가가 된 이후에도 매일 아침 달력 뒷면에 아크릴로 그림을 그릴 정도로 꾸준히 작업해 왔다. 그림은 그에게 일기이자 명상이었고, 일상의 감정과 생각, 보이지 않는 소리들을 붙들어 두는 기록 방식이었다고 한다. (아르떼 - 세상에 없던 예술 놀이터, arte)

    이런 배경을 알고 나면 전시가 훨씬 다르게 읽힌다. 화면 속 선과 색은 즉흥적으로 휘갈긴 흔적이 아니라, 오랜 시간 자신만의 방식으로 감각을 훈련해 온 사람이 남긴 누적의 결과로 보인다. 그래서 〈김수철: 소리그림〉은 데뷔전이지만 전혀 신인의 전시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오래 준비되어 왔기 때문에 처음 공개되는 순간 오히려 더 묵직하게 다가오는 전시에 가깝다.

    전시를 이루는 네 개의 주요 연작이 꽤 분명한 세계를 만든다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이번 전시는 크게 「소리 푸른」, 「수철소리」, 「소리탄생」, 「소리 너머 소리」 같은 주요 연작들로 작가의 회화 세계를 보여준다. 각각의 연작은 서로 다른 분위기를 갖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자연, 감정, 우주, 침묵이라는 커다란 층위 안에서 서로 연결된다. (Daljin)

    소리 푸른: 자연의 에너지와 순환을 그린 푸른 화면

    가장 먼저 주목하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소리 푸른」 계열이다. 기사에서는 푸른 바탕 위에 붉은 원이나 강한 획이 중첩되며 세상의 기운과 순환을 보여주는 작품들, 그리고 푸른 색면 소품들이 함께 조응한다고 설명한다. 푸른 화면은 단순히 차갑거나 고요한 색으로 머물지 않고, 어떤 깊은 울림과 생명력, 거대한 자연 에너지를 품고 있는 장처럼 작동한다. (Hani)

    이 연작이 흥미로운 이유는 ‘파랑’이 정적인 색으로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화면은 조용한데 그 안에는 굉장히 큰 진동이 있다. 마치 먼 바다를 보는데도 내부에서는 화산 활동이나 조류의 흐름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느낌에 가깝다. 그래서 이 전시의 파랑은 풍경의 색이라기보다 에너지의 색, 혹은 살아 있는 리듬의 색으로 느껴진다.

    수철소리: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가장 솔직한 감정의 층위

    「수철소리」 연작은 작가의 희로애락과 일상적 감정이 그림일기처럼 담긴 작업으로 소개된다. 특히 달력, 스케치북 등에 기록한 그림일기를 모아 만든 대작은 작가의 내면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작품군으로 보인다. (Hani)

    이 연작이 중요한 이유는, 김수철의 회화가 단지 거대한 우주적 상상력이나 개념적 추상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는 아주 사적인 감정과 일상의 잔향도 화면에 남긴다. 그래서 전시는 웅장한 기운과 개인적 기록이 동시에 공존하는 구조를 갖게 된다. 이 균형이 꽤 좋다. 너무 거대한 이야기만 하면 관객은 거리감을 느끼기 쉬운데, 「수철소리」는 그 세계를 다시 인간적인 체온으로 끌어당긴다.

    소리탄생: 우주, 외계, 보이지 않는 신호에 대한 상상력

    이번 전시에서 가장 독특한 축은 역시 「소리탄생」 연작일 것이다. 공개 기사에서는 외계 행성에서 지구로 보내는 소리, 혹은 지구와 전혀 다른 차원의 공간을 상상하며 구현한 작업들이 언급된다. 어떤 작품은 중력 방향조차 달라 보이도록 물감의 흐름이 위와 옆으로 뻗어나가는 구성으로 설명되며, 색색의 부호와 검은 덩어리, 파동 같은 선들이 미지의 신호처럼 등장한다고 한다. (Hani)

    이 연작을 통해 느끼는 것은 김수철이 소리를 단순히 청각적 현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에게 소리는 존재의 신호이고, 우주의 기척이며, 설명되지 않는 감각의 근원에 가깝다. 그래서 이 작품들은 추상화이면서 동시에 일종의 우주론적 상상화처럼 보인다. 설명 가능한 세계의 바깥에 있는 무언가를 계속 불러내려는 태도가 화면에 남아 있다.

    소리 너머 소리: 침묵과 근원의 감각을 다루는 작업

    「소리 너머 소리」는 제목부터 이미 인상적이다. 들리는 소리를 넘어, 소리가 사라진 뒤에도 남는 감각, 혹은 처음부터 발화되기 전의 고요를 다루는 작업처럼 읽힌다. 소개 자료에서는 이 연작이 침묵과 근원의 고요함을 묘사한다고 설명하고, 일부 기사에서는 파괴되는 지구의 자연과 바다의 실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면도 언급한다. (Daljin)

    이 연작이 특히 좋게 느껴지는 이유는, 소리를 다루는 전시가 오히려 침묵의 문제로까지 나아간다는 점이다. 좋은 음악이 쉼표를 필요로 하듯, 좋은 회화도 비어 있는 영역과 멈춤의 감각을 필요로 한다. 그런 점에서 「소리 너머 소리」는 이 전시 전체를 단순한 에너지의 분출로만 읽지 않게 만드는 중요한 축이다.

    음악가 출신이라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감각의 훈련이다

    김수철이라는 이름은 대중적으로 너무 강하다. 그래서 이 전시는 자칫 ‘유명 음악인의 그림’으로 소비되기 쉽다. 하지만 공개된 기사와 전시 자료를 종합해 보면, 이 전시를 진지하게 보게 만드는 핵심은 유명세가 아니라 감각의 훈련량이다. 그는 음악을 하면서도 그림을 놓지 않았고, 팬데믹 시기에는 2평 남짓한 공간에서 200점이 넘는 작업을 완성할 정도로 집중적으로 작업했다고 한다. 물감 냄새로 편두통을 겪을 정도였고, 결국 별도 작업실까지 마련할 정도로 몰입했다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매일경제)

    이런 서사를 알고 보면 화면의 밀도가 다르게 느껴진다. 여기에는 단순한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집요함이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집요함이 전시를 가볍지 않게 만든다. 유명인이어서 전시를 여는 것이 아니라, 전시를 열 수밖에 없을 만큼 이미 오랫동안 자기 세계를 구축해 왔다는 인상이 강하다.

    이 전시를 보면서 떠오르는 가장 큰 키워드는 ‘공명’이다

    〈김수철: 소리그림〉을 한 단어로 정리하면 아마 ‘공명’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린다. 소리와 그림이 서로를 닮았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의 감각이 다른 감각 안에서 다시 울린다는 뜻에서 그렇다. 이 전시는 귀로 듣는 음악을 눈으로 옮겨놓았다는 단순한 등식보다 훨씬 복합적이다. 어떤 화면은 리듬처럼 보이고, 어떤 화면은 잔향처럼 남고, 어떤 화면은 거의 타악기의 ضرب처럼 강하게 와 닿는다.

    그래서 이 전시는 추상회화를 익숙하게 보는 사람에게도,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도 모두 열려 있다. 미술사적 언어로 보면 색면, 제스처, 물질성, 즉흥성과 구축성의 균형 같은 포인트를 읽을 수 있고, 대중적 감각으로 보면 “정말 눈으로 소리를 듣는 느낌”이라는 더 직관적인 인상으로 다가갈 수 있다. 전시가 좋은 이유는 이 두 층위를 동시에 허용한다는 데 있다.

    총평

    〈김수철: 소리그림〉은 음악가 김수철의 부업 같은 전시가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내면의 리듬과 감각의 기록이 비로소 독립된 회화 언어로 세상 앞에 나온 전시라고 보는 편이 맞다. 예술의전당 전시 소개가 말하듯 이번 전시는 소리라는 비물질이 회화라는 물질 언어로 전환되는 새로운 조형 언어의 제안이며, 약 1,000여 점에 달하는 작업 중 엄선된 작품들을 통해 작가의 회화 세계를 하나의 지도처럼 펼쳐 보인다. (Daljin)

    개인적으로 이 전시의 가장 큰 장점은 ‘이름값’보다 ‘세계의 밀도’가 먼저 남는다는 점이다. 전시를 보고 나면 유명한 음악인을 봤다는 느낌보다, 오랫동안 소리와 진동, 자연과 우주, 감정과 침묵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려 온 사람의 시간을 보고 나왔다는 감각이 더 크게 남는다. 그래서 이 전시는 팬심으로 보는 전시가 아니라, 한 예술가의 감각 체계가 어떻게 장르를 넘어 확장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전시로 기억될 만하다.

     

    https://www.sac.or.kr/site/main/show/show_view?SN=77434

     

    김수철: 소리그림

    2026-02-14(토) ~ 2026-03-29(일) <br />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제1전시실, 제2전시실<br />(주)이엔에이파트너스

    www.sa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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